Jul 15. 02

질문하는 능력

AI와의 채팅방에 무엇이든 입력하면 수 분, 수 초 내에 답이 나오는 시대이다. 이제 답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프롬프트, 좋은 질문이야말로 좋은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 아닐까? 좋은 질문은 답보다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는 답을 가르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500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방법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1968년, NASA의 아폴로 1호 화재 사고로 우주비행사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아폴로 프로그램의 엔지니어들은 단 하나의 질문을 습관처럼 던지기 시작했다. "이게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질문이 이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가능하게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올바른 질문 하나가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 저명한 일이다. AI 시대에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잘 하는 사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소, 직업을 불문하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들을 종종 봐 왔다.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공통점이 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맥락에서 빠진 주제를 잘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일터에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데, 갑자기 아무도 꺼내지 않은 주제를 던지는 사람이 있다.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게 사실 가장 중요한 주제다. 과거의 비슷한 프로젝트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했던 문제인데, 이번엔 아무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걸 캐치해서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으려면 경험이 쌓여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지금 이 맥락에 대입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목적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걸 지금 해야 돼요"라고 하면, 대부분은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먼저 묻는다. "지금 그걸 함으로써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이런이런 것들인가요?" 디테일보다 먼저 목적을 짚는다. 이 질문 하나로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하려고 했던 일이 사실 필요 없었거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경우들이다.

 

세 번째는 바로 답하지 않고, 의도를 묻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가 아니라 "이걸 통해서 어떤 상태가 되길 바라세요?"라고 묻는다. 또는 "이 방향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나요?"처럼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건드리는 질문을 한다. 답이 정해진 질문은 정보를 얻지만, 의도를 묻는 질문은 맥락을 얻는다. 그 차이가 결과물의 방향을 바꾼다.

 

 

 

기획자에게 질문이 특히 중요한 이유

기획자는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크고 작은 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서비스, 제품, 프로젝트가 된다. 그 결정들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영역까지 챙겨야 한다. 디자이너는 사용성을, 개발자는 구현 가능성을 확인한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기획자는 그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봐야 한다. 그러려면 각각의 입장에서 빠진 게 없는지를 계속 물어야 한다.

 

질문을 못 하는 기획자는 주어진 것만 처리한다. 질문을 잘하는 기획자는 주어지지 않은 것까지 발견한다. 그 차이가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가른다고 본다.

 

 

 

AI 시대에 질문이 더 중요해진 이유

AI는 질문에 답하는 걸 잘한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맥락을 읽고,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걸 짚어내고, 아직 아무도 꺼내지 않은 아젠다를 발견하는 것, 이것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AI 시대 이전에도, 동료 또는 부하직원에게 일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비슷한 것 같다.

 

요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AI에게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결과물의 퀄리티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려면, 먼저 사람에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이 없으면 AI를 잘 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한 답을 찾는지보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답이 넘쳐날수록,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질문하는 능력을 기르는 법

질문하는 능력은 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왜"를 한 번 더 묻는 습관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기 전에 "왜 해야 하는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적을 먼저 보는 눈이 생긴다.

 

두 번째는 다른 분야의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이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정된 시간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볼 수 없다면 책이나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본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경험이 넓다. 비슷한 맥락을 다른 상황에서 겪어봤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에서 빠진 게 뭔지를 알아챈다. 그래서 책이든 대화든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면 질문의 재료가 쌓인다.

 

세 번째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대부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뭔가를 말해야 한다는 압박이 질문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잠깐 멈추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를 생각한 다음 질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대화 후에 메모하는 것이다. 오늘 회의에서 아무도 묻지 않은 것, 나중에 보니 중요했던 것들을 짧게 적어두는 습관이다. 이것이 쌓이면, 어떤 맥락에서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는 패턴이 생긴다.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전에, 사람에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하는 능력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가장 갈고닦아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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