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노하우

AI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법

제나로Genaro 2026. 7. 31. 10:58
콜라주 출처 : González Sara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들

 AI가 답을 내놓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질문을 던지면 몇 초, 길게는 수 분 안에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 결과물이 맞는지 틀린지, 좋은지 나쁜지, 써도 되는지 아닌지.. 그걸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런데 그 판단을 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준이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의 기준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쩄거나 AI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2024년쯤부터 현재(2026년 7월) 까지도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기준이 없는 사람은 AI의 결과물을 검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토할 수 없으니 그냥 쓰는데, 아무런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게 쌓여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는 요즘 꽤 자주 관찰하고 있다.

 

 

기준 없이 AI 결과를 그대로 쓰면 생기는 일

 가장 먼저 벌어지는 일은 설명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물은 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물으면 "AI가 이렇게 해줬어요"가 유일한 대답이 된다. 그 후로 아무런 설명이 없으면, 솔직히 우습다. 그 순간 그 결과물은 더 이상 본인의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AI가 터치했더라도, 어떻게 그런 결과물이 나오게 됐는지, 사고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수정을 못 하게 되기도 한다. 기준이 없으니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AI가 다시 해주기를 기다리거나,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쓴다. 결과적으로 퀄리티의 주도권이 내가 아닌 AI에게 있게 된다. 토큰을 다 쓰거나 인터넷 연결이 안 되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복하기 어렵다. 이번에 잘 됐어도 왜 잘 됐는지 모르니까, 다음에 똑같이 하려고 해도 재현이 안 된다. 운 좋게 좋은 결과물이 나온 거지, 실력이 쌓인 게 아니라고 본다. AI가 더 고도화되어 재현율 100%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해도, 사용자의 실력은 그대로이다.

 

 가장 무서운 건 위의 세 가지가 서서히 벌어진다는 점이다. AI가 워낙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니까 처음엔 괜찮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 자꾸 멈추게 된다. 기준이 없으면 판단이 없고, 판단이 없으면 결정이라는 것이 없어진다. 결국 AI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된다.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이유

 무난하고 평범한 삶이 최고의 삶이라고 부르지만, 그게 내 상황에 맞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문장부터 꺼내어 보는 이유는, AI는 평균을 잘 만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가장 무난하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래서 AI의 결과물은 대체로 크게 틀리진 않는다. 할루시네이션이라고 부르는, 그럴듯한 거짓말 문제가 고질적으로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논리를 많이 빗겨가진 않는다. 할루시네이션이나 인지 편향은 세부 사항일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기획자라면 내 클라이언트가 누군지, 이 서비스의 사용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이런 맥락은 AI가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 맥락을 기반으로 AI의 결과물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 필터가 바로 자신만의 기준이다.

 

 기준이 있는 사람은 AI를 도구로 쓴다. 기준이 없는 사람은 AI에게 끌려다닌다. 결과물의 퀄리티 차이, 실력의 차이, 주도권의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준을 잡는 방법

 기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면, 나도 배우고 싶다. 나 또한 현재의 내 기준이 단단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의식적으로 쌓아갈 수는 있다고 믿는다. 내가 직접 써온 방법들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해봤다.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먼저 적어보기

 AI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내가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지 먼저 적어보는 방법이다. 한 줄이라도 좋으니,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과 어딘가에 적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걸 습관화하면, AI의 결과물을 받았을 때 비교할 기준이 생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게 되는데, 이 차이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기준을 쌓는 과정이 된다.

 

좋고 나쁜 것을 말로 설명하기

 AI 결과물을 보다보면 뭔가 이상하고 상투적인 느낌이 든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왜 이상한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끄집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잘 안 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점점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장이 맥락과 안 맞는다', '이 기능은 사용자 입장에서 불필요하다'처럼. 이 언어화 능력이 곧 기준이 된다.

 

내 분야의 좋은 사례를 많이 보기

 기준은 결국 좋고 나쁜 레퍼런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려는 작업과 관련된 좋은 결과물을 많이 보고, 왜 좋은지를 분석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만약 서비스 기획이라면 잘 만든 서비스를 직접 써보면서 왜 이렇게 설계됐는지를 생각해본다. 글쓰기라면 좋은 글을 읽으면서 문장 구조를 뜯어본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 내 안에 판단의 잣대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실패한 경험을 기록하기

 잘 된 것보다 잘 안 된 것에서 기준이 더 빨리 생기는 듯하다. AI 결과물을 썼다가 공개적으로 지적당한 경험, 내가 설정했던 방향이 틀렸던 경험, 나중에 돌아보니 이상했던 경험들을 짧게라도 기록해두는 게 좋다. 왜 안됐을까를 적는 것만으로도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IT 업계에서는 프로젝트 종료 시마다 '회고 회의' 같은 것을 할 때가 있는데, 나는 이 미팅을 주도할 때 실패한 경험을 다루기를 선호한다.

 

의견을 먼저 말하기

 회의나 대화에서 AI의 결과물을 보여주기 전에 내 의견을 먼저 말하는 연습이다. AI를 쓰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해야겠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AI는 이런 결과를 냈어요' 같은 순서로 말하기 시작하면 된다. 이 반대가 되면 나도 모르게 AI의 의견에 끌려가게 되고, 일터에서라면 수동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쉽다. 내 생각을 먼저 꺼내는 것이야말로 기준을 지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본다.

 

선택한 이유를 적어보기

 무언가를 결정했을 때, 왜 그렇게 했는지를 짧게라도 적어두는 습관은 참 중요하다. 얕은 주제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다룬다면 일기장이 될 수도 있고, 일터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맥락을 적는다면 회의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남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까지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선택한 이유를 적다 보면 내 판단의 패턴이 보이게 되고,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볼 수 있어서 재밌다. 이 패턴이 곧 나만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기준은 나만 만들 수 있다

 자기 기준을 쌓는 법을 나름대로 소개해 봤으나, 기준을 쌓는 건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AI가 결과물을 내놓는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느리다. 그래서 자꾸 생략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기준 없이 AI를 쓰는 건, 나침반 없이 빠른 배를 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속도는 빠른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불안하다.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AI가 내놓은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쌓이며 스스로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다. 그 앎을 언어로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자신만의 기준이다.